당신과 내가 야구를 보는 이유
타이거즈의 팬인 난 살면서 딱 두 번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했다.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82년.
아버지랑 형제들과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고
우리의 자랑 선동열이 나오는 국제 야구 경기 결승이라며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잠실야구장)을 가던 그 길을 기억한다.
일본은 그냥 신들의 선수인 시절.
선동열이 2점을 먼저 내주며 난 과자나 먹으며 아저씨들의 소주 냄새를 맡으며 견뎌냈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
8회말.
김재박이 "그!! 개구리 번트"를 댔다.
The Legendary Frog Bunt!!
김재박은 1루에서 살았고 어찌어찌 동점이 됐다!
정말 야구에서 이런 번트가 성공했다는게 지금도 믿을 수 없다.
이후 주자가 아직 두 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한대화.
좌익수를 넘어 까마득히 날아가는 공.
노오란 팬스에 타구가 맞았다.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 좌측 팬스에 공이 맞자 만원 관중들이 난리가 났다.
악을 쓰고 쏘주병을 던지고 오징어를 던졌다.
난 아버지께 물어봤다.
저거 홈런이냐고?
폴대는 홈런이다.
대한민국 야구 8회의 기적은 이게 시초다.
돈이 없는 우리들은 형제들과 용돈을 모아 무등경기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야구가 좋았으니까.
진짜 야구가 좋았으니까.
9회까지 던지지 않는 투수는 패자라 불리던 시절.
우리 세대에게 70년대의 야구는 고교야구로 통했다.
고교야구 선동열, 문희수, 박노준이 여학생들의 펜레터로 우체국이 뒤집어지던 시절.
친구들과 방과후 어둑한 흙밭에서 글러브로 공을 주고 받고
다 꾸부러진 알미늄 배트로 공을 쳤다.
지금도 나는 야구 글러브의 가죽냄새, 타구가 튀며 올라오는 흙냄새, 경비(소사)아저씨가
문 닫는다며 악을 쓰고 쫓아내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영화 '꿈의구장'에서 옥수수밭을 밀어내고 야구장을 만들자 맨발의 슈레스 죠가 등장하던
그 장면이 환상처럼 꿈에 나온다.
야구가 낭만적이었다는 건 70년대, 80년대였고 그 이후 딱 한 장면이 있었다.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태평양 돌핀스 투수 김홍집.
1대1 동점 상황.
11회말 141구째에 홈런을 맞고 패전이 됐다.
그 141는 올드팬들에겐 여전히 회자된다.
83년 해태 이상윤의 역투나 94년 김홍집의 역투나 우린 낭만으로 기억하지만
투수교체 시스템은 상상도 못한 그 야만의 시절을 혹사 당한 투수들은 그 후로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야구가 낭만으로 남는건 야구라는 경기의 특수성 때문이다.
축구는 90분간의 롱텀으로 경기가 흘러서 골 장면 하나만 기억된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하나 던지는 그 한 장면으로 인플레이가 된다.
그래서 그 공이
볼이 되든,
스트라이크가 되든,
안타가 되든,
삼진이 되든,
스퀴즈 번트가 되든,
홈런이 되든,
병살이 되든,
그렇게 팬들에게는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86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빌 버크너의 알까기 에러처럼 영원히 팬들에게 까인다.
그래서,
야구가 재밌다.
서사가 있으니까.
이번 코시 1차전 김영웅의 에러가 회자가 되듯이.
그리고 그가 보란듯이 나머지 경기에서 호수비를 하고 안타를 치듯이.
그리고 여러분이 다 아는 2002년의 삼성 한국시리즈를 이야기 하자.
삼성라이온즈는 85년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를 해보지도 않았다.
이후 이상하리만치 기나긴 패배를 했다.
난 해태(!) 타이거즈 팬이었다.
지금의 기아 타이거즈는 아그들이나 응원하는 타이거즈다.
타이거즈의 정신은 해태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 속에도 항상 걸리는게 있었다.
"원년 멤버 삼성"이 진짜 우승 한 번 해보길 바랬다.
80년대와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같이 달려온 동업자니까.
이 글의 서두에서 처럼,
내가 첫번째로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던 순간은 2002년이다.
드디어 2002년 이승엽의 홈런,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으로 진정한 우승을 했다.
난 그 장면에서 악을 쓰고 박수를 치며 울컥했다.
드디어 "삼성라이온즈 "의 진정한 우승을 야구팬으로서 축하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두 번째로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한 시간.
2026년 11월 8일 오늘.
삼성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했다.
어쩌면 나는 삼성라이온즈의 우승보다는 포수 강민호의 우승을 기원하며 삼성을 응원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주심의 거듭된 볼 콜에 강민호가 어설픈 영어로 "로우 볼?"이냐며 묻는데
주심이 "노 볼!"로 듣고 퇴장 시키자 미트를 던지며 분노하던 그 어린 포수 강민호.
그 어린 포수가 결국 먼 길을 돌아 오늘 삼성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고 우승했다.
23년이 걸렸다.
마지막 삼진 공을 잡고 마운드로 뛰어 나오는 강민호의 포효와 기쁨과 눈물에
나도 울었다.
당신과 내가 야구를 보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같은 분모에서 열광한다.
야구는 그냥 공놀이가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손잡고 야구장에 가고
형제들과 친구들과 함께 캐치볼을 하고
....
이후 자식들과 함께 야구장에 와서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핫도그를 사준다.
야구의 낭만은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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